책을 매개로 학교와 마을을 잇다
이연정 장학사에게 듣는 ‘1마을 1책 읽기’와 선학 마을엔
(인천시교육청=서서희 시민기자) 지난 9월 28일, 인천 선학 마을엔 2층 강의실에 중학생과 학부모, 지역주민이 모였다. 이날 열린 프로그램은 ‘철학의 위안으로 깊어지고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그림책 철학수업’. 인천광역시교육청의 ‘1마을 1책읽기’ 운동의 하나로 마련된 자리다. ‘1마을 1책 읽기’ 운동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을 읽고 사유하며 마을을 풍요로운 학습 생태계로 변화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책을 매개로 학교와 마을이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 만남을 이어주는 공간 ‘마을엔’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날 선학 마을엔에서 인천광역시교육청 학교·마을협력과 이연정 장학사를 만나 ‘1마을 1책 읽기’가 지향하는 가치와 선학 마을엔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 인천광역시교육청 학교·마을협력과
이연정 장학사
“서로의 삶을 공감하는 독서문화운동입니다”
Q. ‘1마을 1책 읽기’는 어떤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나요?
"독서는 현재 학교나 가정에서도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고민한 것은 마을에서 책을 어떻게 함께 읽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읽고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읽고, 각자가 읽은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가 다를 수 있구나’, ‘같은 책을 읽어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공동체성도 함께 함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1마을 1책 읽기’는 한 마을에서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책을 읽고 그 안에서 서로 소통하면서 서로의 삶을 공감하는 독서문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학사는 특히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어떤 책을 함께 읽을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부터 마을의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는 이런 특색이 있고, 이런 교육 현안이 있고, 학교는 이런 교육과정을 갖고 있는데 어떤 책을 선정하면 좋을까’ 하는 것부터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됩니다. 책을 선정하는 과정도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작가와의 강연이나 토론회를 통해 서로의 삶을 연대하는 활동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고르고,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는 과정까지 독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Q.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책을 읽더라도 살아온 삶의 배경이나 연령,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감상과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이 장학사는 이를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고, 공진화할 수 있다는 거죠. 독서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일상에서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것. 이 장학사가 말하는 ‘함께 읽기’의 중요한 의미다.
학교와 마을을 이어주는 ‘마을엔’
Q. 선학 마을엔은 어떤 공간인가요?
“이 공간은 교육청 혼자만의 힘으로 구축된 것도 아니고, 학교 혼자로서도 세워질 수 없는 공간입니다. 구청의 협력도 있었고 마을의 협력이 모두 합쳐진, 그야말로 민·관·학 협력 거버넌스의 출발입니다.”
특히 이 장학사는 학교에서 시작된 학생의 배움이 실제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일상에서 체득해야 합니다. 주민들은 우리 학생들의 배움이 조금 더 마을을 넘어설 수 있도록 그 역량을 잘 키워줘야 서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학교의 교육과정이 마을에서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마을은 학생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 어떤 프로그램과 소통이 필요한지를 학교·구청·마을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학교와 마을을 이어주는 연결 공간으로서 학생도 사용할 수 있고 주민들도 사용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학교에서 시작된 배움과 학생이 살아가는 마을의 삶을 연결하는 곳. 선학 마을엔이 맡고 있는 역할이다.

‘주체성과 고유성’을 담은 프로그램
Q. 이번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주체성과 고유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I와 인간이 함께 쓰는 시, 그림책 철학수업, 그림책과 함께하는 음악 등 프로그램은 다양합니다. 요즘에는 AI를 어떻게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도 중요한 화두이고요. 개개인의 주체적인 표현과 고유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다움을 잘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 협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이 장학사는 이를 위해 “삶의 실천과 AI 역량을 결합해 주체성을 갖고 서로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책으로 만난 ‘탐구공동체’
이 장학사가 말한 ‘생각의 다양성’과 ‘상호작용’은 이날 열린 그림책 철학수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철학수업을 진행한 실천연구소 김현래 소장은 그림책을 ‘철학책의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함께 읽은 데이비드 섀넌의 『줄무늬가 생겼어요』에서는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답게 산다는 게 굉장히 쉬워 보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나의 생각인지 타인의 욕망인지를 구분하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Q. 혼자 읽는 것과 함께 읽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탐구공동체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도 결국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거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듣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김 소장은 “결국 모든 책 읽기는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자기 이해의 어떤 길”이라고 말했다. 그림책에서 시작된 질문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각자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철학실천연구소 김현래 소장
“같이 책을 읽다 보면 시선이 다양해지잖아요”
실제 참여자들도 ‘함께 읽기’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선학중학교 학부모 김영자 씨는 “혼자 책을 읽으면 지금 제 상황에만 집중해서 거기에 빠져들게 되는데, 같이 책을 읽다 보면 시선이 다양해지잖아요”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상황을 듣고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고요. 시선을 돌려서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함께 읽기가 좋은 거죠.”

▲ 선학중학교 학부모 김영자 씨
상인천중학교 3학년 임유신 학생은 평소 철학, 특히 윤리학에 관심이 있어 수업에 참여했다. 그가 가장 기대한 것은 다른 참여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휴대폰으로 채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대면하면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담소를 하는 것이 요즘 얻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에는 특히 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 상인천중학교 3학년 임유신 학생
서로 다른 세대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 권의 그림책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생각을 꺼내놓는 모습은 이 장학사가 말한 ‘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현장에서 구현되는 한 장면이었다.

“배움과 삶이 잘 선순환하는 공간이 되기를”
Q. 앞으로 마을엔과 ‘1마을 1책 읽기’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시나요?
이 장학사는 학생의 배움이 학교만의 힘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배움의 범위가 넓어지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합니다. 한 마을이 우리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세대 간의 소통과 삶의 터전으로서 이 공간이 잘 이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연대하는 활동이 이어지고, 마을엔이 '배움과 삶이 잘 선순환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 바람은 ‘1마을 1책 읽기’가 앞으로 어떤 독서문화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하나의 책을 읽는 것이 단순한 학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체득한 것이 스스로에게 삶의 실천이 되고 그 삶의 실천이 누군가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쳐서 읽걷쓰가 정말 내 삶이 되는 문화의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대가 함께 책을 통해 서로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다양성을 품은 포용적인 공동체로서의 독서문화였으면 좋겠습니다.”

▲ 교육문화공간 마을엔
마지막으로 ‘1마을 1책 읽기’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고 했다.
“한 권의 책으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인간다움이 함께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
이연정 장학사가 전한 ‘1마을 1책 읽기’의 의미다.
책을 함께 읽는 것에서 시작해 서로의 생각을 듣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그 배움을 다시 일상으로 가져가는 것. 그 과정이 이어지는 곳에 학교와 마을이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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